자립

2019년 12월 19일 목 오후 10:54


의존하면 안 돼.

이 문장으로 나를 학대해왔습니다. 안 된다는 부정어가 쓰렸습니다.



내가 마치 곧은 전나무 같다고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전나무밭에 혼자만 나무인 전나무. 사람들이 기대러 오고 기대어 가는 곧은 나무. 점점 외로움이 속을 좀먹고, 멀끔히 껍질만 남아 쓰러져 가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서야 나는 상상을 깨쳤습니다. 아, 나는 한 번도 곧게 자란 적이 없었군요. 먼 과거서부터 마음은 언제나 휘어 자랐습니다. 나는 사람에게 기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자립이란 단어를 주웠습니다.



혼자 서기. 의존하지 않는 것과는 달라요. 의존은 타인을 대상으로 전제합니다. 곧게 자라. 의존하면 안 돼. 누구든 네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대상에서 떨어지고 떨어져야 하는 그 마음이 외로움을 불렀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나는 항상 사람이 필요했어요. 항상 사람을 찾았습니다. 이타적 마음이란 명분으로 타인의 행복에 기대어 살았습니다. 같이, 라는 말에 스민 기대감으로 얼마나 많은 당신들을 내가 도구화했던가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잘 못 살았어요. 한쪽이 기댄 관계의 끝은 무너짐입니다. 같이 시작해 함께 무너집니다.



그러나 자립한 사람이 맺는 관계에는 무너짐이 없습니다. 자립은 대상을 전제하지 않습니다. 같이 쓰러질 수도, 같이 아플 수도 없지요. 마음은 진정 홀로되고 타인을 향해 방황할 길은 사라집니다. 마음은 저로 가득 차 스스로를 돌보고 일어설 의지를 얻습니다. 혼자 일어선 사람은 삶을 이끌 힘을 배웁니다. 그리고 마침내 삶을 끌고 걸어갈 수 있게 됩니다. 뛰어도요. 관계맺음은 의존이 아닌 대면으로 바뀌며 타인과 걸어갑니다.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오랫동안 혼자 서는 법을 잊었던가요. 나는 휘어진 마음을 바로 세울 것입니다. 사람들의 행복을 바르게 사랑할 것입니다. 영영 외로움이 흐를 것 같던 마음은 의존을 끊어냄으로써 말라갈 겁니다. 나는 이제 자립해야겠습니다.